‘나는 잘 모르겠다’는 노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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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플의 3일 짜리 프로그램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까지 석달 정도 수련(?)을 하고 있는데, 그 범위가 충격적으로 전문화/체계화되어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워크숍 진행 스킬들을 과연 퍼실리테이션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은 지경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실전에서 배운 것을 체계화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건 그냥 통째로 새로 공부하는 기분이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학문마다 가진 세계관이나 태도 같은 것이 있는데 퍼실리테이션 분야 또한 그런 것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어 재미있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어떤 사안에 대하여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 종종 사용하는 세 가지 색의 카드 같은 거다. 초록은 ‘찬성’, 빨강은 ‘반대’, 노랑은 ‘잘 모르겠으니 대세에 따르겠음’.

일반적인 상황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할 때, 누군가가 ‘나는 잘 모르겠으니까 분위기에 따를게^^’ 하면 주관이 없거나 수동적인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퍼실리테이션을 의식하고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대세에 따르겠다는 입장도 찬성, 반대와 다를 바 없는 적극적인 의사표현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노란 카드를 들게 해서 조직 안에서 하나의 분명한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 대함.

생각해보면, 보통 어떤 사안에 대하여 의사결정에 참여한 사람 중 한 사람도 ‘반대’ 표명을 하지 않고 최소한 ‘충분히 논의했고 이 정도면 됐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면 우리는 ‘합의됐다’고 보니, ‘반대하지 않겠다’라던가 ‘분위기에 따르겠다’는 사람의 입장이 합의 성사 여부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큰 셈이다.

그래서 ‘과연 그럴까’ 싶어 테스트를 해보니 생각보다 약발이 잘 받는다. 1)우선 사람들이 보통 ‘나에게도 무언가 입장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찬성이나 반대냐를 일단 고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 단계 전에 미리 노란 카드가 포함된 3개의 선택지를 주면 보다 안전하다고 느낌 / 2) 의사결정시 비교적 입장이 뚜렷한 소수가 분위기를 이끌면서 나머지는 객이 되는 경우가 많고, 결정된 사항에도 힘이 잘 실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노란 카드로 인해서 논의의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가 동등한 입장으로 존재할 수 있음 / 3) 노란 카드를 운용한다는 것 자체가 조직이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일종의 메시지 / 4) 처음에 노란 카드를 든 사람의 일부가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 ‘아, 그런 얘기였어? 그렇다면~’ 하면서 다른 색상으로 이동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논의가 보다 풍성해질 가능성이 높아짐 / 5) 마지막으로, 잘 모르겠으면 “잘 모르겠는뎅?”하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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